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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DVD 감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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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동 이발사 - 한국 근현대사의 우화

글 : 김송호 (loomis@horrorexpress.co.kr)


군사 독재 시절. 그다지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평범함의 전형을 보여주는 한 소시민. 그가 운영하던 이발소가 경무대(당시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권력자의 이발사로 발탁된다는 내용의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최근 몇 달 사이 쏟아져 나온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 가운데에서도 상당히 이채로운 성격을 띈다. 즉,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가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상황에 내던져진 인물들을 통해 당시 사회의 어두움과 모순을 직접적으로 꿰뚫었다면 <효자동 이발사>는 비슷한 시대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한 발짝 물러선 상태로, 또한 정면이 아닌 우회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일견, 이것은 지나간 시대에 대한 향수와 윗세대에 대한 감정을 묘하게 자극하는 이야기다. ‘사사오입’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나라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그래서 경호실장이 시키는 ‘각하는 국가다!’라는 구호를 복명복창할 수밖에 없는 순박하고 소심한 아버지가 나오고, 채 100년도 지나지 않은 생생한 역사적 사건들이 스크린에 속속 재현된다. 동네 이발사 아저씨는 흑백의 자료 화면 속에서 닉슨 미 대통령과 ‘각하’의 옆에 서 있으며 청와대로 향하는 탱크 속에서 병사가 나와 길을 묻기도 한다. 가히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별 볼일 없는 동네 이발사가 갑자기 ‘나랏님’의 목에 칼을 들이대거나 머리에다 가위질을 하는 위치에 오른다는 아이러니컬한 설정은 그렇다 치고, 설사병(물론 극중 설사병의 이름인 ‘마르두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간첩으로 오인을 받게 된다거나 10살짜리 꼬마가 정보부에 끌려가 전기 고문을 받고, 그렇게 걷지 못하는 불구가 된 소년이 대통령이 죽고 난 뒤 산골의 돌팔이 한의사가 일러준 처방대로 했더니 다시 걷게 되었다는 데까지 오면 과연 이것이 우회적인 방법인지 아니면 노골적인 판타지인지를 구분하기 힘들게 된다.

어떻게 보면 바로 거기서부터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거짓말 같은 상황이 연속되면서 영화는 하나의 우화로 변모하게 되는데, 특히 낙안이 형형색색의 전구로 치장된 전기 고문을 받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전략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정말로 되도 않는 이유를 통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당시의 처절한 시대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대신, 현실과 판타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지점까지 적절한 희화화를 거쳐 그 비극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얼핏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의 외양을 한 이 영화가 더욱 가슴 아픈 잔향을 남기는 이유는 당의정 속에 든 약의 쓴 부분과 같은 속내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작품의 접근 방식은 관객들로부터 상반된 반응을 이끌어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주제를 쉽고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긍정적인 것과 작품의 무게 중심을 찾을 수 없고 심지어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부정적인 것으로 거의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확실히 이 영화는 균형 감각이 완전하지는 않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장르의 영화로 시작하는 듯하다가도 여지없이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전개로 거침없이 내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던 간에,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가 역사 속의 개인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법의 하나를 그 한계 속에서도 나름대로 확신을 가진 상태로 제시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송강호라는 배우가 없이 성립될 수 없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는 예의 탁월한 감각을 통해 이발사 성한모라는 역할을 관객들이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인물로 멋지게 그려내고 있는데, 기존에 그가 연기해 온 대가 센 인물들보다는 훨씬 덜 두드러지는, 소심하고 정적인 캐릭터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중에서의 그의 존재감은 거의 절대적이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1960년대의 전형적인 아버지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품의 의도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들의 불구와 관련하여 폭발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골목 장면이나 대통령 영정의 잉크를 긁어내다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힘이 느껴진다. 반면 문소리의 팬들은 그녀의 비중에 적어 아쉽다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배역의 조화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더 할 나위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정확히 자리 잡고 충실하게 역할을 소화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대통령 역을 맡은 조영진, 경호실장 역의 손병호 등 연극계에서 잘 알려진 좋은 배우들의 호연도 좋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폭압적이었던 한 시대에 대해,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영화적으로 보다 세련된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효자동 이발사>는 이에 대한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에이나인 미디어가 제작하고 씨넥서스에서 출시하는 <효자동 이발사> DVD는 본편과 스페셜 피처로 구성된 2디스크 사양이다.

메뉴 디자인은 동화 풍으로 그려진 이발소의 전경과 영화 본편의 장면을 조화시킨 것이며, 작품의 유머러스한 특징을 살린 ‘바리깡’(음성 설정), ‘비누’(자막 설정) 등의 메뉴 이름이 재미있다.

본편은 1.85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 종횡비로 트랜스퍼 되었다. 전반적으로 해상도가 선명하지는 못한 편으로, 배우들의 피부나 사물을 접사로 잡았을 때 표현되는 디테일이 두루뭉술하다. 최근작답지 않게 화면에 잡티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한모가 아들을 업고 끊어진 다리 위에 올라오는 장면에서 다소 심하게 나타난다. 레퍼런스 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화질이지만 화면의 부드러운 질감은 오히려 작품의 우화적인 성격에 잘 들어맞는다.

사운드는 돌비 디지털 5.1과 DTS 트랙을 선택할 수 있는데, 비교적 잔잔한 코믹 드라마답게 주된 음향은 프론트 채널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골목에서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나 얼음처럼 찬 강물 소리 등 계절감이나 공간감을 표현하는 핵심적인 사운드가 리어에 배치되어 좋고, 4.19 시퀀스나 대통령의 국장 시퀀스 등의 군중 장면에서는 기대한 수준의 서라운드 효과를 보여준다. 대사도 잘 들린다.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준비된 스페셜 피처는 본 타이틀의 중요한 장점이다. 촬영 당시의 기록은 물론 DVD 출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부록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임찬상 감독이 두 개의 코멘터리 이외에도 주요 부가영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아울러 네티즌 코너를 따로 마련, DVD 커뮤니티를 통한 네티즌들의 의견을 DVD 제작에 반영시키고 그 결과를 별도의 부록으로 제공하는 아이디어도 칭찬할 만하다.

디스크 1에는 두 개의 오디오 코멘터리삭제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코멘터리는 보다 기술적이고 프로덕션 자체에 관련된 화제 중심의 임찬상 감독-김홍백 프로듀서 버전과 작품 자체에 대한 해설을 위주로 하는 임찬상 감독의 단독 버전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어느 쪽도 참여자들의 성의 있는 해설과 정보 전달 면에서 만족스러운 편이다. 삭제 장면은 총 13개로, 따로 디스크 2에서 전체 및 개별 재생을 통해 볼 수도 있고 디스크 1에서 본편 감상 도중 화면에 가위 모양의 아이콘이 나타나면 리모컨을 조작해 이동하여 보는 두 가지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디스크 2에는 본격적인 부가 영상이 수록되어 있는데, 양적으로도 든든한 편이며 각각의 짜임새가 돋보이는 코너들이 많다. 크게 효자동 만들기, 숨겨진 이야기, 효자동 둘러보기, 네티즌과 함께의 네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1. 효자동 만들기

영화의 제작 과정에 관련된 부록이 모여 있다.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효자동 변천사>(38분 29초)에서는 세트, 의상, 소품, 시각효과 등의 분야에서 시대적인 고증에 충실한 화면을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임찬상 감독과 각 팀의 담당자가 직접 해당 분야의 특징적인 정보에 관해 자료 화면을 곁들여 설명한다.

<영화 이야기>(47분 2초)는 메이킹 다큐에 해당하는 영상물로서 성우의 활달한 내레이션과 함께 촬영 과정을 가볍게 스케치하고 있다. 중간 중간 배우 및 스태프의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다.

<효자동 일지>(13분 38초)에서는 프리프로덕션부터 개봉에 이르는 10개월여의 여정을 일정 별로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콘티 제작, 고사, 첫 촬영, 크랭크 업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2. 숨겨진 이야기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들로 이루어진 코너로서, 네티즌과 함께 코너와 더불어 DVD를 위해 별도로 기획 제작된 컨텐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때 그 사건>(17분 50초)은 영화의 무대가 된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해설이다.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쿠데타, 베트남 파병, 10.26 사태 등을 신문사로부터 제공받은 당시의 자료 사진과 흑백으로 처리한 극중의 해당 장면을 묶어 보여준다. 이러한 편집 방식은 ‘사실 그대로인 역사적 현실’과 ‘영화적 현실’이 묘하게 어우러짐으로써 상당히 흥미로운 영상을 만들어 낸다. 임찬상 감독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다.

<송강호와 특별한 만남>(22분 3초)은 주연 송강호와의 단독 인터뷰로 DVD를 위해 새롭게 담은 것이다. 배역 및 작품에 대한 의견 등을 담담하고 조리있게 밝히고 있으며, 인터뷰 분량도 넉넉한 편으로서 코멘터리가 수록되지 않은 아쉬움을 달래준다(본 인터뷰에 코멘터리를 하지 않은 이유도 언급된다).

<삭제 장면>(29분 56초)은 디스크 1에서 본편에 삽입된 커트들을 따로 모은 것으로, 장면 별로, 또는 전체 보기로 감상이 가능하다. 장면 별로 감독의 해설이 삽입되어 있다. 삭제 장면은 레터박스에 돌비 디지털 2.0으로 제공된다.

<감독과의 만남>(10분 59초)은 지난 6월 열렸던 ‘영화 시나리오 분석 세미나’에서 임찬상 감독이 출연한 부분의 실황을 발췌한 것이다. 패널들의 질문에 감독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의외로 시나리오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쪽에 관심 있는 감상자라면 한 번쯤 유심히 보아둘 필요도 있을 듯.

3. 효자동 둘러보기

홍보용 영상을 모은 자료 위주의 메뉴. 뮤직 비디오(윤도현 밴드의 “님과 함께”를 60초 버전과 풀 버전의 2가지로 수록 / 4분 54초), 포스터 촬영(7분 29초 / 출연자 인터뷰 포함), 부산국제영화제 출품내용(2분 11초), 이발사에 관한 짧은 상식(5분 59초), 예고편(3분 2초), 시사회 풍경(6분 55초)이 들어 있다. 이 중 이발사에 관한 짧은 상식은 10개의 문제를 다 풀면(답이 틀리면 문제가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에 사용된 이발소 세트의 연도별 컨셉트와 구조, 디자인 등을 설명하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 식 영상으로 이어진다.

4. 네티즌과 함께

본 타이틀에서 가장 독특한 코너로 네티즌들이 참여한 부록이 있다. 20자평, 추억의 이발관 사진 모음, DIY DVD(DVD 스페셜 피처 아이디어 제안)를 담고 있다. 20자평 같은 경우 그다지 눈에 띄는 내용이 없지만, DIY DVD에서 언급된 아이디어 일부가 실제 스페셜 피처로 현실화되었다는 점에서 제작사와 소비자들 사이 커뮤니케이션의 사례로 남겨둘만 하다.

<효자동 이발사>는 격동의 현대사 한복판의 세월을 살아가야 했던 한 소시민의 우화를 통해 역사 속의 개인을 신선한 시각으로 조명한 수작이다. DVD의 비디오와 사운드는 송강호가 연기한 극중의 이발사만큼이나 평범한 수준이지만, 기획력 있는 스페셜 피처를 통해 영화에 제2의 생명을 부여하는 데 성공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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