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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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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기행기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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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기행기 PART 1 - 현실로부터의 도피
11월의 첫 주말을 앞둔 금요일. 入冬을 일주일 앞두고 만추(晩秋)의 아취(雅趣)를 느껴보고자 경복궁을 찾았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개인
적으로 느끼고 얻은바가 커 내가 아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감상기를 적는다.
들어가며
메멘토라는 영화를 봤던 탓일까? 며칠전 기억상실증 비슷한 병에 걸리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꿈을 꾸었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나를 더이
상 필요로 하지 않았고, 나는 소위 왕따가 되어 이 세상에서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자괴지심(自愧之心)에 몸부림치다
깨어났다. 그리 길지 않은 꿈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해서 깨어난 후에도 한참동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후로 며칠간 내가 아닌 제3자
가 되어 나의 일상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으로 지냈다. 胡蝶之夢이라 했던가? 이제는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까지 미치게 되자 그동안 너무 무의미하게 지내온 일상을 되짚어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더불어 하루가 다르
게 떨어져가는 수은주가 겨울을 알리기 전에 가을의 느낌을 깊이 몸으로 느껴보고자 그 행선지로 고궁을 택했다.
경복궁
조선 태조 3(1394)년에 서울 북악산 남쪽 기슭에 세운 대궐. 선조 25(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고, 고종 4(1867)년에 대원군이 재건하였
으나, 한일합방 후 정면에 총독부 청사를 세워 대부분 철거당하고 근정전, 경회루 등 일부만 남았는데, 1996년 정부 주도로 총독부 청사
를 철거하고 완전한 복원 공사를 꾀하고 있다.

한국어 사전, The Korean Monolingual Dictionary (c) 1996-1999, Microsoft Corporation. Licensed from Mr. Jae Soo Cho.

이름의 의미

공사가 준공된1395년 10월 7일 임금은 신하에게 주연을 베풀고 상하가 술기운이 거나해지자 정도전에게 궁궐의 이름을 짓도록 하였다.

'신(臣)이 살펴 상고하건대 궁궐은 임금이 정치를 다스리는 곳이고 사방에서 우러러보는 곳이며 벼슬아치가 함께 나아가는 곳이니 그런
까닭에 그 제도(制度)를 장하게 하여 높고 엄숙함을 보이고, 그 이름을 아름답게 하여 좋게 느껴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한(漢)나라, 당(唐
)나라 이래로 궁궐의 이름마다 나름대로 그 내력을 지니고 있지만 한결같이 높고 엄숙함을 보이며, 보아서 재미를 느끼게 하려 한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임금께서 왕위에 오른 지 3년에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먼저 종묘를 세우고 이어 궁궐을 이룩하사 그 다음 해
10월 곤룡포를 입고 선조(先祖) 내외분 신주(神主)를 새 종묘로 모신 다음 여러 신하들을 새궁궐로 불러 주연을 베푸시니 이는 신(神)의
은혜를 넓히고 자리를 편히 하고자 하심인지라. 술 세 순배가 돈 다을 신(臣) 도전에게 명하시기를 "이제 도읍을 정하고 종묘를 들이었으
며 새 궁궐마저 준공되었기에 술잔치를 베푼터라 그대는 마땅히 궁궐의 이름을 빨리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함께 영원히 쉬게 하라.
" 하심
에 신은 명을 받고 삼가 머리를 조아리어 <시경(詩經)> 주아(周雅) 편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 부르니 군자 만년 그대의
경복(景福 :큰복)을 도우리라
"고 한 글귀를 외며 청하여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景福)이라 하였으니 임금께서는 대대 자손과 더불어 만년
태평지업(太平之業)을 누리실 것이며, 온 나라 백성들도 또한 길이길이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나 춘추(春秋)에 이르기
를 민력(民力)을 중히 여기며 토공(土功)을 삼가라 하였으니 어찌 임금의 몸으로서 스스로를 받들기 위하여 백성을 채찍질함이 옳다 하
겠습니까? 넓고 큰집에 살면서 가난한 선비를 아낄 것을 생각하고 시원한 대궐에서 지내면서 매사를 가려서 할 것을 마음에 새기면 비로
소 만 백성들이 받드는 가운데 거의 부담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아울어 이 점을 여쭈어 드립니다.
'

태조는 정도전이 올린 의견을 받아들여서 그로부터 새궁궐을 '경복궁'이라고 하였다.

김영상, 서울600년, p101-102, 대학당(1994)

점심을 먹은 후 포만감에 가득찬 배를 부여잡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늦은감이 있어 큰맘먹고 택시를 탔는데 웬걸.. 길이 막혀
'차라리 지하철을 탈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악산 삼청터널, 청와대 앞길을 지나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5000원이 넘게 나온 택시
비가 너무 아까웠다. 입장권을 사기위해 만원짜리를 한장 꺼냈는데.. 헐.. 입장료가 달랑 700원.. ^^;; (참고로 24살 이하는 300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반긴건 다름아닌 허수아비. 입구에서부터 민속박물관
까지 수많은 허수아비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허수아비마다 만든이
와 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아마도 전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허수아비 만
들기' 대회가 있었던것 같다. 허수아비를 유심히 보던 한 외국인이 한국에도
Halloween이 있느냐는 대화를 하며 지나갔다. 참고로 허수아비는 영어로
scarecorw라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어렸을적 허수아비를 주제로 한 동화책을 읽은 기억이 났다. 그 때 허수
아비 사진을 보면서 '다리가 하나인데도 참새들이 속는걸 보면 참새는
참 멍청한가봐..'하는 생각을 했었다. ^^;;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고향
이 서울인지라 허수아비를 직접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이었다.
왼쪽의 꽃은 '꽃범의 꼬리'라는 이름의 관상용 꽃이다. 개화기가 이미 지나
피어있는 꽃이 얼마 없었다. 오른쪽 꽃은 '달맞이 꽃'이다. 이름은 많이 들었
지만 실제로는 처음이었다.(사실은 꽃 이름도 옆에있던 민정이가 알려주었
다. ^^;;) 달맞이꽃에 얽혀있는 한 이야기가 있다.

옛날 태양신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인디언 마을에 로즈라는 미모의 아가씨
가 있었다. 인디언 마을의 사람들은 무척 강인한 사람들로서 태양신을 숭배
해 낮에 주로 활동했다. 그러나 로즈는 낮보다도 밤을 더 좋아했고, 태양보
다도 달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해매다 여름철이 되면 결혼축
제가 열렸는데, 이 축제에서 처녀를 고르는 순서는 규율로서 정해져 있었다.
즉 총각들 중에서도 전쟁에서 적을 많이 죽였거나 평소에 사냥공을 세운 사
람부터 마음에 드는 처녀를 고를 수 있었다.축제가 있던 어느 날, 로즈는 추
장의 작은 아들
을 몹시 기다렸다.
그러나 추장의 작은 아들은 로즈와 1년 동안 사귀었음에도 불구하고 로
즈옆에 서 있는 다른 처녀를 선택하고 말았다. 화가 난 로즈는 다른 남자
의 청혼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 나가 버렸다. 그러나 곧 병사들에게 붙
잡힌 로즈는 규율에 따라 즉시 귀신의 골짜기라는 곳으로 추방되었다.
추방된 로즈는 그곳에서 달님을 추장의 작은 아들이라 생각해 밤이면
밤마다 달을 사모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을 대 추장의 작은 아들은
사람의 눈을 피해 로즈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고 큰 소리로 로즈를 불렀
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만 그는 희미한 달빛에 비친 한송이 꽃을
보았을 뿐 이었다. 로즈는 죽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듯 달맞이꽃
으로 변하여 밤이면 언제나 달을 보고 피어났던 것이다. 로즈가 추장의
작은 아들과 사랑을 시작한지 2년만에 죽었듯이 달맞이 꽃도 2년을 살고
죽었다고 한다.
민속박물관 앞에는 몇십년씩 되었음직한 건물들과 당시의 생활사가 전시되
어있었다. 조그만 구멍가게와 겨울에 집집마다 연탄을 쌓아놓은 모습을 아
이에게 설명해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갑자기 나도 어렸
을적 생각이 떠올랐다.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목
숨을 잃는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우리집은 산꼭대기에 있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지역이라서 저 아랫동네부터 연탄을 직접 날라야 했다.
그 땐 어려서 별로 도움도 안됐겠지만 그나마 연탄 한장씩 나르는게 얼마나
싫었던지.. 일부러 학교에서 늦에오고, 집에 와서도 아픈척 꾀병도 부렸었다.
물론 내동생의 고자질에 나중에는 끌려나갔지만... --;;
사진의 '고려이발소'는 정말 옛날 이발소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듯한 느낌이
었다. '고려'라는 이름이 붙은 상점들이 왜 그리도 많았는지.. 사진 구석에
있는 우체통이 보이는가?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지 않는가? 하긴 요즘
에는 전자메일이라는게 있어서 편지를 보낸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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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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